

[딜사이트경제TV 이태웅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분식회계 사건 2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으면서 오랫동안 발목을 잡아왔던 사법 리스크를 일부 해소하게 됐다. 다만 검찰이 항소에 나설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는 점은 문제로 꼽힌다. 여기에 형사재판과는 다른 입장을 피력했던 행정법원의 항소심 재판도 앞두고 있어 당분간 삼성전자의 경영적 어려움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백강진 김선희 이인수 부장판사)는 지난 3일 오후 2시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 등에 대해 "검사의 항소 이유는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검찰이 2020년 9월 처음 공소장을 제출한지 약 4년 5개월 만이다.
이 회장은 지난 4년여간 부당합병 및 분식회계 재판으로 인해 경영활동에 차질을 빚어왔다. 1심과 2심을 합쳐 100여 차례가 넘도록 재판에 출석했다. 대통령 해외 순방 동행과 같은 주요 일정을 제외하면 대부분 재판에 출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6년 시작된 국정농단 수사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10년간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지 못한 셈이다.
실제 이 회장은 올해 젠슨 황 엔비디아 대표의 기조연설로 주목을 받은 CES 행사에 10년여 간 불참하고 있다. 아울러 글로벌 빅테크 최고경영자들이 모이는 선밸리 콘퍼런스에도 7년째 발길을 끊고 있다. 특히 선밸리 콘퍼런스는 이 회장이 '1년 중 가장 신경 썼던 출장'으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휘말리면서 해외 네트워킹 활동이 눈에 띄게 위축된 모양새다.
글로벌 활동 뿐만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이 회장은 '침묵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 이 회장은 2022년 10월 회장 취임 이후 창립 53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별도의 메시지도 내놓지 않았다. 회장 취임 2주년 및 창립 55주년 기념 행사 등에서도 특별한 메시지 없이 조용한 행보를 이어왔다.
문제는 이 회장의 경영 공백으로 삼성전자가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회사 주력 사업인 반도체 사업이 크게 발목을 잡힌 상황이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게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우위를 내주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주요 공급사인 엔비디아에 수년째 HBM 제품을 공급하지 못할 만큼 기술 경쟁에서 뒤쳐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파운드리 사업 부문에서도 대만 TSMC와의 시장 점유율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번 항소심 무죄 선고가 삼성전자로서는 한숨 돌릴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게 재계 분석이다.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일부 해소하게 된 만큼 향후 대내외적인 경영 활동에 제약이 줄어들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에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3일 이 회장의 2심 판결에 대해 "AI 및 반도체 분야 글로벌 산업지형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이 크게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환영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다만 아직은 안심하기 이르다는 의견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할 가능성 때문이다. 검찰 입장에서는 1심과 2심에 대한 재판부의 결과를 뒤집기 위해 보다 강도 높은 법적 공방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아울러 오는 5일부터 행정법원 판결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예정된 점도 부담 요소로 꼽힌다. 1·2심 형사 재판부와 달리 행정법원은 지난해 8월 삼성전자가 일부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도 사법리스크를 완전히 해소한 것이 아닌 만큼 신중한 태도를 견지 중이다.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는 것이 대표적. 등기이사는 회사 이사회에 참석해 경영 전략을 수립·결정하고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짊어진다는 점에서 책임경영의 상징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회장은 2019년 이후 미등기임원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SK·현대자동차·LG 등 국내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미등기 임원은 이 회장이 유일하다.
이날 이 회장 측 변호인단의 김유진 김앤장 변호사도 "이번 판결을 계기로 피고인들이 본연의 업무에 전념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고 밝히면서도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변호인단이 이야기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해당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기 때문에 할 얘기가 없다"며 "변호인 측에서 설명한 내용으로 갈음해 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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