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경제TV 최태호 기자] ETF(상장지수펀드) 시장의 독보적 1위였던 삼성자산운용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2위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맹추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정부 규제마저 삼성자산운용의 발목을 잡는 모습이다.
정부가 지난주 해외주식형 TR(토탈리턴) ETF를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해당 상품의 비중이 큰 삼성자산운용의 시장점유율 수성에 적신호가 켜졌다.
24일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삼성자산운용의 KODEX 미국S&P500TR의 순자산은 3조6120억원(21일 기준) , KODEX 미국나스닥100TR은 1조8259억원이다. 합산 순자산은 5조4379억원으로, ETF 시장점유율 2위인 미래에셋자산운용과의 순자산 격차(4조4270억원)보다 크다. 해당 상품에서 투자자들이 이탈할 경우 시장 점유율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삼성자산운용의 ETF 시장 점유율은 지난 2020년말 51.98%로 미래에셋운용(25.31%)을 크게 앞섰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으론 양사의 격차가 2.08%포인트까지 좁혀졌다.
미래에셋운용과의 ETF 점유율 격차가 좁혀지는 상황에서 TR 상품은 삼성운용의 점유율 방어에 큰 역할을 해왔다. 삼성운용 역시 저보수 전략을 구사하며 수익성을 일부 포기할 정도로 힘을 줬던 상황이다. 실제로 미국 TR 상품 2종의 순자산은 지난해에만 4조원 이상 늘었다.
삼성운용은 지난해 4월 이 상품들의 총보수를 연 0.05%에서 연 0.0099%까지 인하했다. 실질 매출로 이어지는 집합투자업자 보수(운용보수)는 0.029%에서 0.0009%까지 낮췄다. 지난해 해당 ETF로 벌어들인 매출은 1000만원 내외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순자산이 조 단위인 ETF들의 운용보수 매출이 최소 수억에서 수십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인하 폭이다.
삼성운용 관계자는 딜사이트경제TV에 “TR 상품의 효용성을 알리기 위해 운용보수를 인하했다”고 설명했다.
TR 상품은 배당금을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대신 자동으로 재투자해 ETF 가격에 반영해왔다. ETF 매도 전까지는 15.4%의 배당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돼 장기투자시 과세이연으로 복리효과를 더 크게 누릴 수 있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지난주 기획재정부가 ‘2024 세법개정 후속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를 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TR형 해외 ETF의 분배 유보 범위를 재조정해 매년 1회 이상 결산 및 분배를 하도록 했기 때문.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매년 배당소득세를 내야만 한다.
삼성운용은 TR ETF 2종을 이날부터 분기 분배형으로 전환한다. 분배 기준일은 1월, 4월, 7월, 10월의 말일로, 오는 5월 7일 첫 분배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상품명의 TR 표기도 삭제된다.
미국 주식형 ETF 자산규모에서 미래에셋운용에 밀리고 있는 삼성운용의 고민이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삼성운용 관계자는 "해당 상품들의 보수는 그대로 유지되는 만큼 다른 상품들과 대비한 매력도는 여전하다"며 "향후 투자자들의 수요를 파악해 글로벌 투자 트렌드에 알맞은 상품을 적시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순자산 규모를 보면 미국 주식형 상품의 격차가 크다. 지난 21일 기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미국S&P500과 TIGER 미국나스닥100의 순자산은 각각 7조5589억원, 4조6279억원이다. 동일 지수를 추종하는 삼성운용 상품의 2배다.
삼성운용은 미국 빅테크에 투자하는 ETF 중에서 순자산 1조원이 넘는 상품이 없다. 반면 미래에셋운용은 TIGER 미국테크TOP10 INDXX, TIGER 미국필라델피아반도체나스닥 등이 순자산 2조원을 넘기고 있다.
운용업계에선 양사의 상품 출시 시기 차이가 희비를 가른 것으로 보고 있다. 미래에셋운용은 지난 2010년부터 나스닥100 현물 ETF를 2010년에 상장했지만 삼성운용은 지난 2018년에야 같은 지수를 추종하는 선물 상품을 출시했다. 삼성운용이 미국 지수 현물 ETF를 출시한 시기는 2021년4월로, 업계 2위인 미래에셋운용뿐 아니라 3, 4위인 KB, 한투운용보다도 늦다.

미국 빅테크 ETF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출시해 상장폐지를 겪었다. 삼성운용은 지난 2014년 KODEX 미국S&P IT(합성)과 KODEX 미국S&P 금융(합성)을 출시했지만 설정원본액이 50억원 미만에 머물러 지난 2019년 해당 상품들을 상장폐지했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삼성운용은 ETF 시장에서 미국 주식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고, 법인이 헷지용으로 매입할 선물 상품이 필요할 거라는 판단에 당시 선물만 출시한 걸로 안다”며 “해외주식에 대한 개인투자자의 관심이 뜨거워진 이후에는 원유선물 ETF 소송, 인력유출 등으로 조직역량이 분산돼 대응이 늦어졌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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