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경제TV 김병주 기자] 지난해 400조원 규모를 넘어선 국내 퇴직연금 시장을 둘러싼 시중은행 간 경쟁이 지속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0월 퇴직연금 실물 이전 제도 시행 이후, 자금 확보 경쟁에 나선 주요 은행들은 저마다의 장점을 앞세워 고객 유치에 한창이다. 딜사이트경제TV가 최근까지 국내 4대 시중은행이 거둔 퇴직연금 현황 및 성과를 분석해 봤다.
지난해 KB국민은행은 거침없는 실적 행진을 이어갔다. 1분기 어닝쇼크를 가져온 ‘홍콩 ELS’ 사태 충격을 단시간 내에 극복하며 리딩뱅크 탈환도 확실시된다. 대출 중심의 역대급 이자익, 여기에 비이자익 개선세는 8000억원이 넘는 충당부채를 극복할 만큼의 경쟁력을 보여줬다.
다만, 지난해 하반기 KB국민은행의 과제로 거론됐던 퇴직연금 부문에서는 다소 아쉬웠다는 평가다. 물론 눈에 보이는 분기별 지표는 나쁘지 않았지만 퇴직연금 실물 이전 제도 시행을 전후로 순증 규모를 포함해 전체적인 연간 흐름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규모의 경쟁’, 앞서가는 KB국민
퇴직연금 시장을 바라보는 은행권의 전략은 거의 유사하다. 각 은행마다 강점을 띠고 있는 분야가 다른 상황인 만큼, 가장 잘하는 부문의 경쟁력을 키우는 전략이다.
일단 눈에 보이는 KB국민은행의 지난해 퇴직연금 지표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KB국민은행의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약 42조481억원이다. 이는 신한은행의 45조9108억원에 이어 시중은행 가운데 두번째로 가장 많은 규모다.
KB국민은행이 그간 퇴직연금 시장에서 집중해 온 상품군은 ‘확정기여형(DC)와 ‘개인형퇴직연금(IRP)’다. 실제 지난해 분기별 지표를 살펴보면, KB국민은행은 DC와 개인IRP 상품 적립금 규모에서 단 한번도 타 은행에 1등을 빼앗기지 않았다.
지난해 말 기준, KB국민은행의 개인IRP 적립규모는 15조6622억원으로 2위인 신한은행(15조6043억원)을 600억원 가량 앞섰다. 전분기보다 격차는 600억원 가량 줄었지만 여전히 1위자리는 공고히 유지했다.
DC형도 마찬가지다. 지난 4분기 말 기준 KB국민은행의 DC형 적립액은 14조2494억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이는 역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보인 신한은행(13조6038억원)을 6000억원 이상 앞선 수치다.
특히 KB국민은행은 은행을 포함해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전체 사업자 중 유일하게 DC 그리고 IRP 적립금 규모에서 한해도 빠짐없이 1위를 유지하고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퇴직연금 DC형은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18년 연속, 개인형 IRP 또한 지난 2010년에서 지난해까지 15년 연속 적립금 1위의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거센 추격에 주춤해진 증가세
눈에 보이는 KB국민은행의 퇴직연금 주요 지표만으로는 충분히 긍정적인 해석이 가능하지만 ‘흐름’을 놓고 보면 상황은 다소 달라진다. 은행권 퇴직연금 시장의 강자로서 입지는 다지고 있지만, 이를 뒤쫓는 은행들의 추격 속도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일단 적립금 증가 부문에서 다소 더딘 흐름을 보이고 있다. 앞서 KB국민은행이 가장 강한 부문으로 언급한 DC, IRP 모두 적립금 증가세가 주춤했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의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DC형 적립규모는 전년 동기(2023년 4분기) 대비 2조9228억원 늘어났다. 이는 같은 기간 3조원 넘게 증가(3조437억원)늘어난 신한은행 뿐 아니라 하나은행(2조9541억원)의 증가규모 보다도 낮은 수치다.
DC형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 기간 KB국민은행의 DC형 잔액은 1년 새 1조5983억원 늘어났다. 이는 동 기간 가장 큰 규모의 증가금액을 기록한 하나은행(1조9141억원)에 3200억원 가량 뒤진 수치다. 이뿐 아니라 1조6000억원 이상 늘어난 신한은행 보다도 증가폭이 적었다.
DB형을 포함한 전체 퇴직연금 적립 규모의 증가액도 KB국민은행은 5조2216억원에 머물면서 6조5000억원을 기록한 하나은행, 그리고 5조5000억원의 신한은행 대비 더딘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앞서 언급한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 시행 전후의 흐름이다. 거의 모든 은행은 해당 제도 시행 전후로 신규 고객 유치 나아가 타 은행 고객을 빼 오기 위한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다만 KB국민은행이 사실상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의 긍정적 효과를 거의 누리지 못했다.
KB국민은행의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액은 해당 제도 시행 이전인 3분기 말 대비 2조5466억원 늘어났다. 이는 나란히 3조원 이상의 적립액 증가를 기록한 신한은행(3조2098억원)과 하나은행(3조2656억원)에 뒤처지는 수치다.
여기에 KB국민은행의 강점이었던 DC형과 IRP부문의 적립액 증가규모도 각각 8363억원, 8741억원에 머물렀다. DC형 증가액은 신한(9318억원)과 하나(8966억원)이어 세 번째, IRP는 신한(9441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였다.

수익률 개선 또한 ‘시급’
업계에서는 KB국민은행이 다소 더뎌진 퇴직연금 시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수익률 회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퇴직연금 사업 경쟁력의 핵심이 결국 수익률인 만큼, 이를 꾸준히 개선하는 것은 비단 KB국민은행 뿐 아니라 모든 퇴직연금 운용사업자들의 과제다.
그 중에서도 KB국민은행의 경우, 핵심 상품 부문의 수익률이 다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여타 퇴직연금 운용사들과 비교하면 그리 낮은 수익률은 아니지만, 흐름 자체가 좋지 않은 것은 지표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KB국민은행의 DC형 수익률(원리금 비보장 기준)은 10.49%, 개인IRP 수익률(원리금 비보장 기준)은 10.43%로 집계됐다. DC형의 경우 하나(12.83%), 신한(10.55%)에 뒤지는 수치다. 개인IRP는 하나(10.78%)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타행과 비교하면 그리 나쁜 수익률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문제는 ‘흐름’이다. 지난해 3분기에는 DC형의 경우 하나은행(14.14%)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고 개인IRP 수익률은 14.61%로 4대 시중은행 중 가장 높았다.
특히 전 분기 대비 수익률 둔화폭은 DC형과 개인IRP형 모두 4대 은행 중 가장 컸다. 낮은 수익률이 더딘 자금 유입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해석 또한 가능한 부분이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물론, 전반적인 시장 내 불확실성으로 대부분 운용사의 수익률이 하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건 맞다”면서도 “타행 대비 기업 및 개인고객 수가 많다는 KB국민은행의 장점을 퇴직연금 부문에서 살리기 위해서는 수익률 개선이 무엇보다 필요한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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