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조직 재정비를 통해 ‘새로운 룰’을 만든다.
[변윤재 기자] 앞서 최 회장은 “그동안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으로 선진국에 진입했지만 더는 이 전략을 쓰기는 어렵다. 시스템 안에 새로운 룰을 만들어가야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사업 철수와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해 비상경영체제를 지속하는 한편, 미래 성장을 위한 전략적 투자를 지속돼야 한다고 거듭 역설해왔다. 1일 단행된 SK그룹의 인사에서 이 같은 최 회장의 구상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변화는 계속된다” 안정-혁신 투트랙 가동
경기 침체와 지정학적 변수가 장기화되면서 경영 불확실성이 증폭된 만큼, 기존의 성장방정식을 답습하는 수준으로는 그룹의 미래 기반을 다지기 어렵다. SK그룹이 택한 방향은 안정과 혁신의 투트랙이다.
올해 부회장 이상 최고위급에서는 변화가 없었다. 그룹 최고 의사협의기구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는 조대식 의장이 사상 첫 4연임을 확정했다. 새로운 부회장은 탄생하지 않았다. 대신 장동현 SK㈜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박정호 SK하이닉스부회장, 유정준 SK E&S 부회장 등 기존 부회장들을 재신임하는 것으로 갈음했다.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역시 대부분 유임됐다. 리더십을 안정화시켜 위기 대응력을 높이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전체 임원 규모가 줄었다. SK실트론 제외한 신규 임원은 총 145명으로, 지난해(164명)보다 19명 줄었다.
다만 인적 자원을 활용해 혁신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는 7개 위원회 체제를 유지했지만, 5개 위원회 수장을 사장급으로 바꿨다.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이 위원장을 맡았던 환경사업위원회는 장용호 SK실트론 사장이 맡았다. 장동현 SK㈜ 부회장이 이끌던 커뮤니케이션위원회는 이형희 사장이 넘겨받았다. 이형희 사장이 맡았던 SV위원회는 조경목 SK에너지 사장이 이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담당했던 ICT위원회는 유영상 SK켈레콤 사장이 맡는다. 서진우 SK 중국사업 담당(부회장)이 이끌던 인재육성위원회는 박상규 SK엔무브 사장이 담당한다. 일종의 세대교체다. 상대적으로 젊은 사장급에게 책임있는 역할을 줌으로써 전사 차원에서 혁신 기조를 불어넣으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계열사별로도 사장단에서 재배치가 활발했다. 김철중 SK이노베이션 포트폴리오 부문장, 박진효 SK쉴더스 대표, 윤풍영 SK㈜ C&C 대표, 이동훈 SK바이오팜 대표, 이성형 SK㈜ 최고재무책임자(CFO), 이호정 SK네트웍스 경영지원본부장, 최성환 SK네트웍스 사업총괄, 최영찬 SK온 경영지원총괄 등 8명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또 박성하 사장이 SK㈜ C&C에서 SK스퀘어로, 박상규 사장은 SK네트웍스에서 SK엔무브(옛 SK루브리컨츠)로 이동했다. 안재현 사장과 전광현 사장은 SK케미칼, SK디스커버리로 옮겨 대표자리를 맞바꿨다.
특히 사장단은 관리 역량을 갖춘 인재들의 전진배치가 눈에 띈다. 사업을 총괄하는 이들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시장에서 기회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내외 악재 속에서도 안정적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파이낸셜 스토리 실행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인 것이다.
ICT 계열사 콘트롤타워인 SK스퀘어를 이끌게 된 박성하 사장, SK㈜ C&C의 대표를 맡게 된 윤풍영 최고투자책임자(CIO), 김철중 포트폴리오부문장은 기획 역량을 갖춘 전략통들이다. 안재현 SK디스커버리 사장, 이호정 SK네트웍스 경영지원본부장은 투자·전략 전문가이고, 이성형 SK㈜ CFO는 재무통이다. 이동훈 SK㈜ 바이오투자센터장은 M&A와 투자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전진 배치된 기업들은 과제를 안고 있다. SK스퀘어는 원스토어, SK쉴더스, 11번가의 기업공개(IPO)가 무산돼 기업가치를 제고할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SK㈜ C&C는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수습 과정에서 재무적 손실 최소화, 고객사 신뢰 회복, 기업가치 제고를 동시에 실현해야 한다. SK㈜는 재무 관리, 사업 포트폴리오 최적화, 사업상 시너지를 고려한 투자가 필요하다. SK네트웍스는 전기차 충전과 같은 신사업을 통해 지속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SK케미칼과 SK바이오팜은 그린소재로의 에코트랜지션, 글로벌 신약 시장에서 입지 강화라는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그룹의 허리 역할을 하는 임원들의 경우, 전문성과 다양성이 강화됐다. 고은정 SK하이닉스 담당을 비롯해 여성 임원 13명이 별을 달았다. 지난해(8명)와 비교하면 5명 증가한 것으로 올해 여성 임원은 50명 수준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1년 사이 2배 가량 뛴 셈이다. 특히 안정은 11번가 최고운영책임자(COO)가 각자대표로 내정돼, 그룹 내 첫 여성 대표가 됐다. 3040 기술 인재들도 속속 등용됐다. 1980년생인 박명재 담당은 차세대 기술인재로 발탁됐다.
‘위기 속 기회 찾는다’ 미래가치 정조준
SK그룹의 인사를 관통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미래가치’다. 해외 투자를 강화하고, 체제 정비를 통해 중장기 목표를 앞당기기 위한 전략이다.
해외 사업 수행을 지원할 전사 조직이 구축됐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는 전략위원회를 전략글로벌 위원회로 확대·개편했다.
계열사들도 해외 사업 역량을 높일 체제를 구축했다. SK하이닉스는 미래전략 산하 글로벌 전략을 신설했다. CEO 산하에 글로벌 오퍼레이션 TF를 세웠다. 글로벌세일즈앤마케팅GSM)은 글로벌 세일스와 마케팅·상품기획으로 나뉘 각각의 역할에 집중한다. 반도체 업황 둔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미중 갈등, 공급망 재편과 같은 변수가 지속되고 솔리다임과의 인수 후 통합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글로벌 오픈 이노베이션 담당을 신설했다. 세계 시장에서 유망기술을 발굴·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SK에코플랜트는 환경사업 산하에 글로벌에코BU와 국내에코BU를 세워 해외시장 진출에 집중한다.
연륜 있는 전문경영인들은 글로벌화를 지원한다. 서진우·유정준 부회장은 그룹의 중국, 북미사업을 총괄한다. 특히 유정준 부회장은 SK E&S 대표에서 물러나 북미 사업에 전념한다. SK E&S의 미국 에너지솔루션 사업을 담당하는 패스키 대표를 겸직하면서 에너지·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미국 내 투자사업들의 정책 개선을 도모하고 사업 부담을 줄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김준·박정호·장동현 부회장은 글로벌 투자, 친환경에너지와 배터리, 반도체 등 ICT사업 해외 경쟁력 강화에 집중할 예정이다.
전환기를 맞은 계열사들은 시너지를 노린 체제 정비가 이뤄졌다. 유영상 대표는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를 총괄한다. 커스터머 CIC, 엔터프라이즈 CIC를 통해 유무선 통신·미디어와 기업간거래(B2B)·브랜드·기업문화에서 협력을 추진한다. SK텔레콤의 인공지능(AI) 컴퍼니 정체성을 강화할 체제도 갖췄다. 애이닷(A.(추진단, 디지털혁신CT(CDTO), AIX(CTO)를 신설하고 C레벨들이 서비스와 기능별로 책임지는 치프 오피스 방식을 도입한다.
SK네트웍스는 3세 경영 안착을 위한 기반을 다졌다. 최신원 전 회장의 장남인 최성환 사업총괄이 사장으로 승진한 데 맞춰 이호정 경영지원본부장을 총괄사장로 선임한 것. 이 총괄사장은 회사 전반을 챙기는 동안, 최 사업총괄이 경영자로서 역량을 높여나갈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지난 2년간 경영지원본부장 겸 신사업추진본부장, 사업총괄로 회사의 투자, 주요 의사 결정을 함께하며 호흡을 맞췄다.
재계에서는 SK그룹이 이번 인사과 조직 개편을 통해 ‘성장’에 대한 고민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사업적으로 위험 요인이 상존하고 있지만, ‘파이낸셜 스토리’를 강조해 온 이상 시장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해외 개척, 신사업 투자 등에 대한 요구가 강하게 드러난 이유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경제가 안 좋을 때, 오히려 성장의 적기라고 하지만 위험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라며 “더군다나 최태원 회장이 내년까지는 대외활동으로 바쁠 예정이라 성장 속도를 유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화한 것이나, 전문경영인의 권한을 확대한 건 기회를 만들라는 특명이나 다름없다”면서 “계열사별로 중기 전략이 더 구체화되고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경제TV 무단전재 배포금지





Ho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