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경제TV 최영은 기자] 국내 증권시장의 결제주기를 현행 'T+2일'에서 'T+1일'로 단축하려면 적지 않은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와 유관기관의 시스템 개편은 물론 해외 투자자의 시차와 원화 환전, 거래 확인·배분 업무의 자동화 등 한국 시장의 특성을 함께 고려해야 해서다.
시장에서는 한국이 먼저 도입하기보다 일본·홍콩 등 아시아 주요 시장과 보조를 맞추고, 시장 참여자들이 준비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전환 일정과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금융투자협회는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협회 사옥에서 '결제주기 단축(T+1일), 투자자들의 목소리를 듣다'를 주제로 증권시장 결제주기 단축 심층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자본시장연구원과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사와 보관은행, 개인투자자 등이 참석했다.
현재 국내 증권시장은 주식 거래일(T) 이후 두 번째 영업일(T+2)에 실제 주식과 대금이 교환된다. T+1으로 전환하면 매도대금 출금 시점 등이 하루 앞당겨져 투자자의 자금 활용도가 높아질 수 있다.
문제는 결제일만 하루 앞당긴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T+2 체계에서는 거래 체결 이후 청산·차감과 기관투자자의 거래 확인·배분, 결제 지시와 승인 등이 순차적으로 이뤄진다. 이를 하루 안에 처리하려면 관련 제도와 시스템 전반을 함께 바꿔야 한다.
증권사의 부담도 적지 않다. 투자자의 주문 이후 증권사가 거래소와 예탁결제원 사이에서 청산·결제 과정을 수행하는 데다 관련 제도와 시스템 대부분이 현재 T+2를 기준으로 설계돼 있어서다.
박상현 NH투자증권 차장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의 모든 제도가 T+2에 맞춰져 있다"며 "단순히 돈이 들어오고 안 들어오고를 떠나 주식시장 안에 있는 수많은 제도들이 한꺼번에 바뀌어야 하는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해외 기관투자자는 사정이 더 복잡하다. 김미강 SC제일은행 증권업무부 이사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는 매매 계좌와 국내 보관계좌가 분리돼 있어 거래 체결 이후 펀드별 배분과 결제 지시를 맞춰보고, 매수 시 원화 잔고와 매도 시 주식 잔고까지 확인해야 한다.
현재 T+2 체계에서는 결제 전날인 T+1을 이 같은 작업을 확인하고 오류를 수정하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결제주기가 T+1으로 줄어들면 기존에 하루 동안 하던 업무를 거래 직후부터 처리해야 한다.
시차와 환전 문제도 있다. 최훈 한국거래소 청산결제본부 결제업무부 부장은 글로벌 투자자 관점에서 시차와 원화 환전 제약, 거래 확인·배분 절차의 자동화 미비를 T+1 전환의 주요 과제로 꼽았다.
미국 투자자의 경우 한국 시장 거래가 끝난 뒤 현지 야간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사후 업무를 이어가야 할 수 있다. 외환시장 거래시간이 확대됐지만 원화 유동성이 풍부한 시간대가 제한적인 만큼 결제대금을 마련하는 데도 제약이 생길 수 있다. 거래 확인과 배분 과정에서 수작업이 남아 있다는 점도 결제시간이 짧아지는 T+1 체계에서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은 이에 대응해 외국인 투자자를 포함한 시장 참가자들의 거래·결제 업무를 자동화하고 처리시간을 현재보다 절반 이상 줄이는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거래소와 예탁결제원의 시스템만 바꾼다고 전환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수탁기관은 물론 해외 투자자의 시스템까지 함께 연계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국이 다른 시장보다 먼저 T+1을 도입할 필요는 크지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과 일본, 홍콩 등 아시아 시장을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운용하는 경우가 많은 만기 때문이다.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중요한 것은 도입 여부보다 언제 시행하는 것이 적당한가"라며 "아시아 주요 시장의 일정과 글로벌 T+1 전환 흐름 등을 고려해서 발맞춰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국가보다 훨씬 빨리 선제적으로 도입했을 때 더 선진적인 시장이라고 볼 수 있는 사안도 있지만 결제주기 단축은 그렇지 않다"며 "다 같이 발맞춰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시행 시점과 준비 절차를 담은 로드맵이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는 요구도 이어졌다. 해외 투자자와 금융기관이 시스템 개발과 예산 편성에 나서려면 사전에 충분한 준비기간이 필요해서다.
김미강 이사는 "T+1 결제주기 단축은 예탁결제원의 시스템 개발만으로는 달성되기 어렵다"며 "국내 유관기관뿐 아니라 해외 투자자의 시스템까지 적시에 개발될 수 있도록 10월 예정된 로드맵에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개발안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도 지난해부터 워킹그룹을 가동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수탁기관 등 시장 참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오는 10월 제도 개선과 시스템 개편 사항, 향후 추진 일정 등을 담은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최 부장은 "업계 의견을 많이 듣고 있는데 안 되는 수많은 이유를 듣는다"며 "거래소와 예탁결제원이 주도하는 입장에서는 업계에서도 '이건 될 것 같다'는 얘기도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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