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6년 1월 31일 07시 0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TV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경제TV 임성윤 기자]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이면 집집마다 가장 공을 들이는 관리 대상이 있다. 바로 수도관이다. 영하의 기온 속에서 고여 있는 물은 예외 없이 얼어붙고, 팽창한 얼음은 단단한 배관을 무참히 터뜨린다. 노련한 이들은 이를 막기 위해 수도꼭지를 아주 살짝 열어둔다. 가느다란 물줄기라도 끊이지 않고 흐르게 하는 방법이 동파를 막는 가장 저렴하고 확실하다. 가상자산 시장이 겪은 지난 겨울도 이와 닮아 있다. 테라·루나 사태와 FTX 파산은 시장 신뢰를 붕괴시켰고, 유동성은 급격히 말랐다. 이른바 '크립토 윈터'다.
최근 국회와 정부에서 논의 중인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안을 두고 정부와 업계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양측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린다. 정부는 과거 테라·루나 사태 당시의 비극적인 피해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력한 잠금 장치를 채우려 하고 있다. 거래소를 공적 인프라(ATS)와 동일하게 취급하면서 대주주 지분을 제한하고, 거래소 운영을 은행 컨소시엄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방안이 핵심 골자다. 투자자 보호라는 명분 아래 시장의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설계 하겠다는 의지다.
반면 기업들의 반발은 거세다. 업계는 지나치게 보수적인 규제가 이제 막 싹을 틔우려는 산업의 성장판을 닫아버리는 치명적인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대주주 지분 제한과 관련해서 DAXA(거래소협의체)는 공식 성명문을 발표하면서까지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디지털자산 거래소의 대주주는 단순한 재무적 투자자가 아니라, 이용자 자산에 대해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주체다. 인위적으로 지분을 분산시켜 손을 떼게 만드는 조치는 책임 경영의 근간을 흔들 뿐만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최종적인 보상 책임마저 희석시킨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용자 보호라는 대의조차 손상시키는 모순을 낳는다.
은행 컨소시엄 중심의 운영안에 대해서도 비판의 시각이 적지 않다. 전통 금융권의 보수적인 리스크 관리 기준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디지털자산 시장 특유의 신속한 의사결정과 혁신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규제로 인해 신규 서비스 도입과 시장 대응이 늦어지면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미 성장 단계에 진입한 민간 기업의 소유 구조를 제한하는 조치는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고, 향후 시장에 진입하는 창업·벤처 기업들에게 불확실성을 확산시킬 수 있다.
디지털 자산은 유가증권과 달리 국경이 없다. 24시간 전 세계로 흐르는 이 거대한 유동성의 바다에서 우리나라만 홀로 갈라파고스식 규제의 둑을 쌓는다면 1100만 명에 달하는 이용자와 신생 기업들은 순식간에 해외 거래소로 이탈하는 디지털 엑소더스를 선택한다. 이는 국내 산업의 경쟁력 상실을 넘어 대한민국이 미래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할 디지털 금융 패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규제는 국익을 지키기는 커녕 기업들의 팔다리를 묶어 성장을 저해하는 족쇄가 될 뿐이라는 얘기다.
시장은 이미 혹독한 겨울을 겪으며 교훈을 얻었다. 붕괴의 원인은 규제의 부재 뿐만 아니라, 위기 때 충격을 흡수하고 유동성을 공급할 주체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참여자가 많고 시장의 층위가 두터울수록 개별 실패가 산업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지기 마련이다. 규제의 역할은 시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안전망이어야 한다.
꽉 막힌 수도관은 결국 터진다. 논의 중인 디지털자산기본법이 혹여나 있을 겨울에 배관이 얼지 않게 물길을 열어두는 최소한의 '낙수조치'여야 한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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