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경제TV 범찬희 기자] 산업계를 뒤흔들고 있는 미국의 관세 정책과 맞물려 현대차의 과거 유산인 ‘패스트 팔로워’(추격자) 전략이 되살아난 모양새다. 현대차는 고(高)관세 부과로 인한 마진을 보전하기 위해 가격을 선제적으로 인상하지 않고 최종 관세율과 경쟁 업체 상황 등을 지켜보기로 했다. ‘퍼스트 무버’(개척자) 정신을 앞세워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서 주도권 확보를 주문해 온 정의선 회장의 승부사 기질이 관세 전쟁 앞에서 수그러든 모습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이승조 현대차 CFO(최고재무책임자)는 지난 24일 열린 ‘2025년 2분기 컨퍼런스’를 통해 관세 대응책에 대한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이날 이 CFO는 “가격을 주도해 나가기보다는 시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어떤 것이 가장 고객 가치에 부합하는지 등을 검토 하겠다”며 “패스트 팔로워 전략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패스트 팔로워는 후발 주자가 시장에 연착륙하기 위해 택하는 보편적인 경영 전략이다. 오랜 업력을 통해 축적한 노하우를 가진 리딩 기업을 벤치마킹해 제도권에 진입하는 방식이다. ‘2등 주의’라고도 불린다. 비즈니스가 정상 궤도에 들어선 이후에도 애써 선두를 꿰차려 하지 않고 추격자에 머문다. 1등이 일궈낸 혁신과 아이디어를 어깨너머로 습득해 개발비와 각종 리스크를 절감할 수 있다. 질(명성) 보다 양(비용)을 추구하는 일종의 가성비 전략인 셈이다.
패스트 팔로워는 글로벌 3위 완성차 기업이 된 현대차에게도 친숙한 키워드다. 미국, 일본, 유럽의 ‘선배’ 메이커를 참고해 국제적 수준의 생산 시스템과 기술을 구축했다. 일본 도요타의 시그니처인 JIT(저스트 인 타임‧적기공급생산)를 발전시킨 JIS(저스트 인 시퀀스‧직서열생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자동차가 전통적 개념의 기계 장치에서 벗어나 전자제품화 되면서 현대차는 기조를 달리했다. 정의선 회장은 HEV(하이브리드)를 고집하는 도요타와 달리 EV(전기차), 수소 등 첨단 기술력 확보에 매진했다. 퍼스트 무버가 돼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개척하는 선구자가 될 것을 공언하고 이를 실행해 왔다.
자율주행(모셔널), 로봇(보스턴다이내믹스), UAM(슈퍼널) 분야에 대한 투자도 정 회장의 개척자 기질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내연기관(ICE) 일변도인 아날로그 시절에 기술 독립을 일구기까지 지난한 세월이 걸린 선대 회장들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된다.
이번 미국의 관세 정책에 대한 현대차의 대응 방식을 놓고 미온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과거의 유산으로 여겨지던 패스트 팔로워 전략이 부활하면서 현대차 스스로 일본 메이커 보다 한 수 아래임을 자인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현대차와 달리 도요타, 마즈다 등은 대미 관세가 15%로 확정되기 전부터 가격 인상을 검토하겠다는 메시지를 표명해 왔다.
완성차 업계 한 관계자는 “가격에 따라 세계 최대 완성차 시장인 미국에서의 희비가 엇갈릴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면서도 “도요타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만큼 후발 주자 이미지를 풍기는 패스트 팔로워 보다는 시나리오별로 세분화 된 계획을 공표했더라면 현대차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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