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2025년 5월 28일 09시 0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TV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필리핀 마닐라=딜사이트경제TV 신현수 기자] 마닐라 마트와 편의점은 물론, 창고형 할인점까지. 필리핀에서 소주는 더 이상 낯선 술이 아니다. '진로의 대중화'가 목표인 하이트진로는 어느새 현지인들의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았다. 이국의 식탁 위에 소주가 오르는 게 자연스러워진 까닭이다.
지난 18~19일(현지시간) 필리핀 곳곳에서 하이트진로 소주와 이를 구매하는 현지 소비자들을 만났다. 필리핀은 동남아시아 시장 중에서도 가장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국가다. 이에 하이트진로는 현지 최대 유통사인 PWS와 파트너십을 맺고, S&R, 퓨어골드, SM마트, 세븐일레븐 등 유통 채널별 타깃층에 따라 맞춤 전략을 전개 중이다.
먼저 마닐라 중심 상업지구인 마카티(Makati)에 위치한 창고형 할인점 S&R(S&R membership shopping)에 들어선 순간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진열대마다 켜켜이 쌓인 대용량 상품들, 돌아다니는 철제 카트, 은은한 냉기와 공기 중에 감도는 특유한 냄새까지. 딱 코스트코(Costo)를 떠올리게 하는 이 공간은 필리핀 내 운영되는 회원제 매장이다. 하이트진로는 이곳을 프리미엄 소비층과 소상공인을 동시에 겨냥할 수 있는 전략 채널로 보고 집중하고 있다.
S&R 매장 주류 코너 한켠에서는 하이트진로의 시음 행사가 진행됐다. 참이슬 오리지널과 후레쉬, 과일 소주(딸기에이슬·청포도에이슬·자두에이슬) 등이 시음대에 나란히 진열됐고, 병을 차갑게 하기 위한 아이스버킷도 있었다. 소비자들은 제품을 직접 맛보며 설명을 들었고, 일부는 4병짜리 묶음 패키지를 망설임 없이 카트에 담았다. 가격은 '청포도에이슬(360ml·4입)'이 399페소, '참이슬 후레쉬(360ml·4입)'이 429페소 수준. 원화로 환산하면 9850원에서 1만590원대로 현지 주류에 비해 가격대는 높은 편이지만, K-컬처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쌓은 덕이다.
시음대를 찾은 얼윈(Erwin·43)은 "혼자 마실 땐 4병, 친구들과 파티할 땐 20병짜리 한 박스를 산다"고 밝혔다. 전직 바텐더였던 그는 2014~2015년 무렵 필리핀 바(Bar)에서 처음 소주를 접한 뒤 팬이 됐다. 얼윈은 "필리핀 현지 술은 대부분 도수가 센데, 소주는 그보다 훨씬 부드럽고 깔끔하다"며 "참이슬 시리즈 중 빨간 뚜껑의 '오리지널'을 즐겨 마신다"고 답했다. 이어 "과일이나 돼지고기, 오리고기 같은 음식이랑 잘 어울리고, 맥주나 다른 술이랑 섞어 마셔도 괜찮은 것 같다"고 부연했다.

다음 행선지는 필리핀 내 최대 규모의 슈퍼마켓 및 하이퍼마켓 체인 중 하나인 '퓨어골드(Puregold)' 파라냐케점. 중산층과 소규모 자영업자를 주요 타깃으로 하는 이곳은 소비자 직구매와 중간 도매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며, 로컬 소비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유통 채널 중 하나다. 매장 주류 코너 중심에는 진로의 과일 리큐르 제품군과 레귤러 소주, 패키지 세트(소주잔 2본입·4본입) 등이 진열됐다.
이 매장에서 진로 제품의 가격은 병당 100페소 안팎으로 2500원 가까이 된다. 현지 로컬 주류와 비교하면 약 60%가량 높은 금액이지만, 소비자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필리핀은 커피 소비량이 높은 나라로, 스타벅스 콜드브루 벤티 사이즈가 200페소에 달해도 주저하지 않고 사 마신다. 소주 역시, '조금 비싸도 좋아하면 산다'는 소비 문화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현지 소비자 안드레아(Andrea·24)는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다 보면 한국 드라마에서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며 "그걸 보고 처음 접하게 됐고, 지금은 가족들과 일주일에 한두 번, 한 번에 한 병씩은 마신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서 흔한 탄두아이, 엠페라도르와 같은 40도짜리 술을 마시면 그 다음날 숙취가 엄청 나는데, 소주는 그렇지 않아 요즘 들어 더 많이 찾는 술이 됐다"고 밝혔다.
퓨어골드 MD를 담당하고 있는 마리 필 레예스(Marie Phil Reyes·42)는 "퓨어골드 매장에서 소주는 하루 평균 20~24병 정도가 판매되며 가족 행사 시즌에는 판매량이 더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지 소비자들은 처음엔 과일 맛으로 입문하지만, 점차 레귤러 소주로 자연스럽게 옮겨간다"며 "K-콘텐츠에 기반한 브랜드 노출 효과가 꾸준히 작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수환 하이트진로 필리핀 법인 팀장 역시 "과일 맛을 선호하는 20대 여성 소비층을 중심으로 과일 소주를 많이 찾고 있다"며 "현재 퓨어골드에서는 과일 소주의 판매 비중이 레귤러 소주에 비해 30%가량 더 높다"고 밝혔다. 이어 "레스토랑과 같은 외식업장에서 레귤러 소주가 많이 팔리면서 최근에는 레귤러 소주를 집에서 마시는 현지 소비자들이 점차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소비 흐름에 맞춰 하이트진로는 유통 현장 관리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퓨어골드를 포함한 마닐라 지역 주요 매장에는 총 6명의 MD가 상주하며 진열 상태를 살피고, 클레임 대응은 물론 판촉 활동까지 직접 챙긴다. 매장 직원 교육과 시음 행사도 꾸준히 이어지면서, 제품이 단순히 진열되는 데 그치지 않고 소비자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필리핀 리테일 업계 1위 SM그룹이 운영하는 '몰 오브 아시아(Mall of Asia)'. 에스컬레이터 너머로는 커다란 코기 인형이 눈에 띄었고, 천장까지 탁 트인 유리창을 통해 햇살이 쏟아졌다. 매장 안으로 더 들어서자 폴리싱된 바닥, 고급 브랜드 매장이 길게 늘어선 복도, 그리고 깔끔한 구조의 대형마트가 이어졌다. 쇼핑 공간이라기보다 라이프스타일 복합시설에 가까운 이 분위기 속에서, 문득 국내의 스타필드가 겹쳐졌다.
SM몰은 아시아 3위 규모의 복합 쇼핑몰로, 500개 이상의 매장이 입점한 필리핀 최대 규모의 쇼핑 단지 중 하나다. 여기에 입점한 SM마트는 중상층 소비자들이 즐겨 찾는 대형마트로, 이곳 진열대에 자리한 진로는 필리핀에서 대표 소주 브랜드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외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편의점 세븐일레븐(7-Eleven)에도 진로 소주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가격은 한 병당 135페소(3300원대)로, 앞서 들렀던 곳들 중 가장 고가였다. 점원에게 소주가 잘 팔리느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이며 "주로 청포도에이슬을 많이 찾지만, 요즘은 후레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매대에 더 많이 보이도록 진열을 해놨다"고 짧게 답했다.
이처럼 마트부터 프리미엄 할인점, 도심 편의점까지. 다양한 유통 채널에서 진로 소주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은 단순한 판매 확대를 넘어 브랜드가 현지 생활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특히 과일 리큐르로 시작해 일반 소주로 이어지는 소비 흐름은 하이트진로가 장기적 관점에서 구축한 제품 포트폴리오 전략이 효과를 거두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필리핀 소비자들의 손끝에서 자연스럽게 선택되는 초록색 병. 그 안에는 하이트진로가 현지에 대한 애정이 뭍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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