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경제TV 김병주 기자] 싱가포르는 홍콩과 더불어 아시아 금융시장의 허브로 주목받고 있다. 이미 약 600여개의 금융사가 싱가포르에 진출해 금융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그만큼 싱가포르가 아시아 금융 허브로서의 잠재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도 싱가포르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물론, 일찌감치 싱가포르에 진출한 수많은 글로벌 은행들과 비교하면 성장세는 이들에 미치지 못한다. 다만, 해외 금융사와의 협업 또는 글로벌 기업 대상의 금융 주선등을 통해 서서히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만난 정동욱 KB국민은행 싱가포르 지점장은 “아직 KB국민은행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디딤돌을 천천히 쌓아 올리고 있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아시아 거점 ‘싱가포르’, 팬데믹도 뚫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2022년 1월, 싱가포르 지점을 오픈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을 때였다. 당연히 은행뿐 아니라 많은 기업들의 해외 사업은 사실상 멈춰 섰다. 언감생심 신규 시장 진출을 꿈도 꾸기 어려운 시점이었다.
다만, KB국민은행은 달랐다. 공격적인 글로벌 시장 개척을 위해 새로운 거점이 필요했다. 그 가운데 눈에 들어온 곳이 바로 싱가포르였다. 아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금융허브로 성장하고 있는 싱가포르는 홍콩과 더불어 수많은 글로벌 금융사들이 집결한 ‘별들의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KB국민은행 역시 싱가포르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리저널허브(Regional Hub), 즉 중추지역으로 키우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있다. 홍콩지점에 있었던 아시아심사센터가 싱가포르로 옮겨온 것 또한 이같은 전략의 일환이다.
특히, KB국민은행은 싱가포르 지점장을 두고 일종의 ‘내부 오디션’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약 20명의 후보자를 대상으로 면접을 포함한 일련의 지점장 선임 절차가 진행됐다. 글로벌 금융 허브 답게 다양한 글로벌 학력, 경력을 가진 인물들이 싱가포르 지점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렇게 20대 1의 경쟁을 뚫고 선임된 인물이 바로 정 지점장이었다.
정 지점장은 “당시 중국 상해 법인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중국은 싱가포르가 국경의 문을 연 몇 안 되는 국가였다”라며 “싱가포르로 입국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점장이 된 것 아니었을까”라며 웃었다.
해외 법인 근무 경험을 갖춘 그는 사실상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특히 당시 싱가포르 지점 개설에 투입된 인력은 총 5명 정도였는데, 정 지점장을 제외한 나머지 4인은 한국에 있었다. 싱가포르에 들어올 수 없는 상황에서 정 지점장만이 유일하게 현지에서 지점 설립을 위해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그는 지점 설립 3년 만에 규모의 성장, 그리고 실적의 성장을 이끌어냈다. 자산규모는 10억달러까지 성장했고 조직 또한 △기업금융 △IB 유닛 △자본시장 유닛 △아시아심사센터 △글로벌 핀테크랩 등 총 5개로 늘었다. 해외에 진출한 국내 시중은행 가운데 국민은행 싱가포르 지점처럼 세분화된 조직을 보유한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는게 정 지점장의 설명이다.
당기순이익과 같은 단순 실적 지표는 아직 눈에 띄는 수준은 아니다. 다만, 혈혈단신으로 이곳에 들어와 기업금융(IB), 신디케이트론 주선 및 참여, 파생금융 상품 출시 등 현시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사업의 첫발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뗐다는 평가다.
현지화 전략에 안착에도 성공
그가 생각하는 KB국민은행 싱가포르 지점의 성공적 안착의 비결은 현지화다. 사실 현지화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다. 주요 고객인 현지 기업을 대상으로 고객군을 확대하고, 한발 더 나아가 현지인들과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찾는 것 또한 현지화에 포함된다.
그런 의미에서 싱가포르 지점의 현지화는 나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정동욱 지점장은 지점 설립 이후,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뿐 아니라 다국적 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 및 책임자를 지속적으로 만나 고객 파이를 키워왔다. 싱가포르의 경우, 글로벌 금융사뿐 아니라 다수의 다국적 기업이 아시아 사업의 교두보로 시장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소기의 성과로도 연결되고 있다. 최근에는 항공기 인수 금융에 참여했고, 스위스 에너지물류 기업과는 신디케이트론 주관과 관련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특히 신디케이트론의 경우, KB국민은행뿐 아니라 싱가포르에 진출한 국내 주요 은행과의 협업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위 ‘K(코리아) 뱅크’의 자본을 활용해 싱가포르 기업금융 시장에 도전장을 던지는 의미 있는 행보로 보인다.
정 지점장은 “사실 싱가포르의 경우, 여타 해외 시장과 달리 국내 은행 간 고객쟁탈전과 같은 경쟁 구도가 거의 없는 특이한 시장”이라며 “글로벌 금융사와의 경쟁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개별 은행보단 여러 은행이 함께 연합해 대응하는 방식 또한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부 조직도 현지화 전략에 부합한다. 현재 KB국민은행 싱가포르 지점 직원은 약 50여명인데 국적 비율은 한국인과 현지인이 1:3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싱가포르에 진출한 국내 은행 중 가장 많은 직원 수이자 또한 가장 많은 현지인 비율이기도 하다.
물론, 이같은 비율이 가능했던 표면적 이유는 싱가포르 정부가 추진 중인 소위 ‘콤파스(COMPASS)’ 제도다. 싱가포르 정부는 현재 30인 이상 근무 중인 회사 내에서 싱가포르 국적 직원 비중이 60~70% 이상일 경우, 외국인의 비자 연장 심사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고 있다.
다만, 정 지점장은 타 기업이 하고 있는 ‘직원 쪼개기’ 같은 꼼수 대신 오히려 정공법을 택하고 있다. 현지인력 채용이 오히려 글로벌 금융사와의 경쟁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정 지점장은 “현지 인력들 또한 다양한 글로벌 금융사에서 경력을 쌓아온 직원들”이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현지인력 충원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내부통제 고도화에도 집중”
현재 정 지점장이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비즈니스, 그리고 내부통제다. 우선 비즈니스 부문의 경우 남들보다 한발 앞서 여타 글로벌 은행에 준하는 사업을 전개하겠다는 계획이다.
대표적인 부분이 바로 파생상품 판매다. 현재 KB국민은행은 현지에 진출한 국내 은행 중 유일하게 싱가포르 금융당국(MAS)으로부터 파생상품 판매 허가를 취득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KB국민은행의 싱가포르 사업의 주체가 ‘지점 형태’라는 점이다. 현재 파생상품을 판매하는 대다수 국내 은행의 해외 사업 주체는 지점이 아닌 법인이다. 물리적으로 고도화된 파생상품을 지점 단위에서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건 쉽지 않다는 게 은행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 지점장은 “현재 안정적인 파생상품 공급 및 관리를 위해 역량을 고도화하고 있다”며 “조만간 새로운 가시적인 성과도 공개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 하나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내부통제 영역이다. 사실 내부통제 이슈는 이미 국내에서 은행권을 집어삼킬 정도다. 싱가포르 또한 마찬가지다. 특히 싱가포르의 경우, 직접 금융당국이 검사를 하는 국내와 달리 외부감사 기업을 통해 우회적으로 관리를 한다. 이는 관리·감독의 편의성뿐 아니라 보다 정확하고 원칙에 입각한 내부통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도 있다.
정 지점장은 “현지 시스템을 고려하면 사실상 1년 내내 내부통제 심사를 받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리스크 관리를 위해 인력을 고도화하게 조직 또한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지점장은 지난 3년 간의 노력을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1998년 ‘IMF사태’ 당시 눈물을 머금고 철수했던 싱가포르 지점을 다시 세우고 성장시키는 과정의 중심에 있었던 만큼 애정 또한 상당해 보였다.
정 지점장은 “이제 지난 3년여간 뿌렸던 씨앗이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는 중”이라며 “싱가포르에 진출한 여타 한국 은행들이 제공하지 못하는 영역까지 제공해 기업금융 경쟁력을 키워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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